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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0

얼마 전에 재탕한 you said too much를 요새 계속 생각하고 있다. 처음 읽었을 때는 솔직히 비현실적이고 건조하다, 고만 생각했는데, 단 하루지만 외국에서 혼자 기차 여행을 해 보고 나니, 그제야 얀과 유립의 첫 만남 설정이 사실은 얼마쯤 있을 법한 일임을 깨달음과 동시에(유립은 엄청나게 매력적이기 때문에 충분히 가능하다), 얼마나 로맨틱한지 깨달았다.

오빠가 아사히 맥주를 나눠줬다. 아 부드러워 ㅠ_ㅠ 정말 맛있다.

by 제연 | 2008/08/21 00:06 | 일상 | 트랙백 | 덧글(1)

8-19

와 진짜

진짜 우울하다. 얼마나 우울한지 화선지에 뚱뚱한 붓으로 먹칠해 버린 것처럼 머릿속이 시커매져서,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집까지 어떻게 왔는지 모르겠다. 엠피로 귀 처막고 오늘 돌려받은 라 퀸타 카메라를 정독한 기억은 있는데. 돌아와 친구가 빌려 준 ㅇ님 오오후리 회지를 읽으면서도 아무 감흥이 일지 않았다. 찔러도 감각 없는 우울감이라니, 참 오랜만이다.

모르겠다, 뭘 어째야 할지. 작년까지는 안 그랬는데, 올해 들면서부터는 마치 엄청 애매한 오지선다형 질문지를 보며 옳은 답에 체크하는 게 아니라 아리까리하게 틀렸다 싶은 번호부터 하나하나 줄 그어 소거시키고 있는, 그런 기분이다. 그런 식으로 해서 정답이 나온다면 그것도 좋겠지만, 이러다가 다섯 개 다 소거되면 나는 어쩌나. 내게 다른 어떤 선택권이 있지.

까맣고 까맣다.

고민조차 귀찮다. 사는 게 우째 이래?

/

너 혼자 슬픔의 늪 같은 데 빠져 있어도 세상에 이렇게 다정한 사람들이 많구나.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이란 말은 이럴 때 쓰는 걸 지도.

by 제연 | 2008/08/19 20:16 | 일상 | 트랙백 | 덧글(0)

<황금 노트북> 서문에서

나는 한 책에 관해 논문을 쓰며 일 년 혹은 이 년을 보내야만 하는 학생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독법은 단 하나입니다. 도서관과 서점을 뒤지며 흥미 있는 책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이런 책들을 읽다가 지겨우면 그만두고, 질질 끄는 부분은 넘어가되, 의무감에서 혹은 유행이나 일반적인 동향에 속한다고 해서 절대, 절대로 읽지 마십시오. 스물 혹은 서른에 지겹다고 느낀 책이 사십 혹은 오십 세에는 저절로 손이 갈 테니까요. 그 반대도 마찬가지입니다. 적절한 시기가 아니라면 독서하지 마세요. 출판된 책이 출판되지 않았거나 쓰여지지 않은 책만큼이나 많음을 기억하세요. 활자화된 글이나, 역사, 혹은 사회 윤리에 대한 존경을 강박적으로 요구하는 지금조차 교육은 이야기로 행해집니다. 글로 쓰여진 것만 사고하도록 제약받아 온 이들 - 불행하게도 현행 교육 체제하의 거의 모든 산물이 이 이상을 할 수 없습니다. - 은 눈앞에 있는 것은 놓치고 있습니다. 가령, 아프리카의 실제 역사는 흑인 작가와 현인, 혹은 역사가와 주술사들에 의해 보호받고 있지요. 구전되는 이 역사는 백인과 그의 약탈로부터 아직 안전합니다. 당신이 마음을 열기만 하면 쓰여지지 않은 말 속에 담긴 진실을 어느 곳에서나 발견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쇄된 지면을 당신의 주인으로 섬기지 마십시오. 무엇보다 책 한 권이나 한 작가에 관해 논문을 쓰며 일 년 혹은 이 년을 보내야 한다는 사실이 바로 당신이 나쁜 교육의 수혜자임을 의미한다는 점을 알아야 합니다. -당신은 공감을 느끼는 책에서 다른 책으로 옮겨가며 당신의 방식대로 읽도록 교육받았어야 했어요. 자신의 요구에 대한 직관에 충실하도록 배워야 합니다. 다른 이들의 말을 인용하는 방식이 아니라 이런 방식을 발전시켜야만 했어요."

by 제연 | 2008/08/18 12:59 | 감상 | 트랙백 | 덧글(4)

대성당 - 레이먼드 카버

"굴레"라고 나는 말해본다. 나는 그걸 창 쪽으로 들고 가 밝은 빛에 비춰본다. 멋질 수가 없는, 낡은 검은 가죽의 말굴레일 뿐이다. 내가 아는 바는 그다지 많지 않다. 하지만 거기에 말의 입에 물리는 부분이 있다는 것은 안다. 그 부분을 재갈이라고 부른다. 강철로 만들었다. 말의 머리 위로 고삐를 돌리므로 손가락 사이로 목을 잡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마부가 그 고삐를 이리저리 잡아당기면 말은 방향을 바꾼다. 간단하다. 재갈은 무겁고 차갑다. 이빨로 이런 걸 물어야만 한다면 금방 많은 것을 알게 됐으리라. 뭔가 당겨진다면 그건 떠날 시간이 됐다는 뜻이라고. 어딘가로 가고 있다는 뜻이라고.

<굴레> 중에서


이런 무서운 문장이 주특기인 작가님이지만, 하지만 단편집 <대성당>은 정말 좋았다. 물론 무서운 단편들도 있지만, 제목을 딴 <대성당>이나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열> 같은 작품들에서는 슬픔 속에서도 유난히 반짝이는 아름다움이나 따뜻함 같은 것이 느껴졌다. 사실 나는 몇 년 전에 이 작가의 <제발 조용히 좀 해요>라는 다른 단편집을 읽다가 포기했던 적이 있다. 일상에서 스쳐지나가듯 느끼는 슬픔이나 지침, 분노, 좌절, 이기적인 인간 군상의 순간들을 어찌나 날카롭게 잡아내는지, 도저히 맨정신으로는 읽을 수 없었다. 그렇지만 이 책은 다르다. 이전 작품들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아마도 작가가 나이를 먹고 세월이 흐름에 따라 무뎌진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좋았다. 독자로서, 아니 그 이전에 한 인간으로서 정말로 다행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by 제연 | 2008/08/18 12:52 | 감상 | 트랙백 | 덧글(0)

매그넘 코리아 사진전

전날 4시간 못 되게 자고 가기에는 체력의 한계가 있었지만;; 결국 봤다. 이게 한겨레신문 20주년 기념 사진전이라 들었는데, <와 한겨례 진짜 스케일 크다>고 혼자 생각했다;; '유럽에서는 피카소보다 더 유명한 사진 에이전시가 3년 동안 한국을 찍었다'는 문구의 홍보 효과가 정말 컸다. 돈도 엄청 들었지 싶은데 솔직히 16일의 관객 수를 보면, 본전 다 뽑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음 -_ㅜ;; 큐레이터 따라다니는 인파 때문에 사진에 가까이 가기 힘들 정도였다. 나는 사진 찍는 걸 좋아하고 학교에서 매그넘의 홍보 강연도 들은 친구를 따라다니면서 작가나 사진 설명을 주워들었다.

관람료 1만 원은 약간 비싼 듯 적당하다는 느낌? 사진이 아주 많아서 볼 게 많다는 점에서 적당하다. 그러나 내 기준에서는 화집의 확대판 이상이 될 수 없었던 것이... 역시 내가 사진 기술을 잘 모르기 때문인 듯...;; 그러다 보니 결국 보면서 좋다고 생각하는 게 구도나 색감 정도에 맞춰질 수밖에 없는 것 같았다. 예컨대 같은 사이즈라도, 유명한 명화를 원작 그대로 붓선 하나하나까지 볼 때와 현상된 사진을 볼 때는 좀 다르지 않을까 싶다.

또 하나를 짚자면, 역시 '핵심적인 한 방'이 없었다는 점? 물론 그들에게 한국을 한국인답게 보라고 요구하고 싶지 않고 그 색다른 시선을 나 역시 즐겼지만, 보는 순간 <아 ㅆㅂ 한국이다...!> 라고 생각할 만한 사진이... 적어도 내게는 없었다. 그렇다고 내게 '한국'이 어떤 이미지냐고 말하라면 설명하기 어렵지만, 작가전의 한국 사진들은 '한국' 사진이라기보다는 그 '작가'의 사진 같았고, 주제전의 사진들은 한국의 사진기자가 찍은 사진과 큰 차이를 느끼기 어려웠다. 개중에 제일 인상 깊게 남은 건 프랑스 여성 사진작가가 찍은, 도전적인 눈빛을 보내는 여고생 삼인방 사진과, 비교적 처음쯤에 전시되어 있었던 기차역(?) 벤치에 나란히 등을 구부리고 앉아 있는 남자들 사진 정도... 뭐랄까 한국이 '주제'이기보다는 '소재'였다는 느낌. 뭐 이렇게 적어놓고 보니 한국이 주제이길 바란 내 소망 쪽이 지나친 것 아니었나 하는 생각도 든다. 전반적으로, 좋았다 ^^

전시회에 관심 있는 분은 여길 참고하세요: http://www.magnumkorea.com/

아 근데 진짜 어마무지하게 피곤함... 어디 먼 데 갔다 오기만 하면 돌아갈 때 완전히 패전병 같은 상태가 되어버려서 어이가 없다. 체력, 체력이 국력이야 ㅠ_ㅠ 오늘은 알바하면서 집에서 푹 쉬어야지...

by 제연 | 2008/08/17 15:22 | 감상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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